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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거리] 그가 잊혀짐과 싸우는 방법 작성자. 제주국제대학교 등록일. 2017-04-05 09:23:15 조회수. 1,007

[밖거리] 그가 잊혀짐과 싸우는 방법

 

<꿈꾸는 청년, 제주국제대 김영호 교수>

인양을 시작한 날 아침, 한라산 기슭에 위치한 제주국제대학교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를 만나러 갔습니다. 단원고 희생자들이 살아있다면

스무살이 됐을 그 봄, 2016년 3월 희생자 7명을 신입생으로 맞아 화제가 된 그 학교입니다.

(관련 기사 "음악이 꿈" 단원고 희생자 7명 제주국제대 입학 - 오마이뉴스)

 

"인터뷰하러 오셨지요?"

 

노란리본이 붙은 검은 선글라스를 낀 중년의 남성이 주차장에서 불쑥, 인사를 건넵니다. 체게바라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웹진팀을 맞이한 김영호 교수님.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대중음악과 교수님이라더니 과연 멋쟁이시구나 했는데, 생각을 알아챈 듯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시각 장애가 있어 늘 특수 제작한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끼신다고. 인터뷰는 학생들의 발성 연습이 한창인 실습실 바로 옆, 회의실에서 진행됐습니다.

 
<제주국제대학교 실용예술학부 대중음악전공 김영호 교수>

 

먼저 1년 전 맞은 그 신입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대중음악과 신설 과정에서 여러가지로 신경 쓸 일들이 많았지만, 세월호를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당시 서울 롤링홀에서 릴레이로 열렸던 희생자 추모 콘서트 '열일곱살의 버킷리스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끝나면 버킷리스트를 썼던 고 박수현군을 포함해, 그 아이들이 갈 곳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총장님께 아이들의 꿈을 잇고 싶습니다, 제안 드렸더니 흔쾌히 재가해주셨습니다."

 

버킷리스트 공연 기획자를 통해 인연이 닿은 유가족들은 김 교수님의 제안을 고심 끝에 받아들였습니다. 스쿨밴드의 멤버들과 공연하기를 버킷리스트로 썼던 박수현 군을 포함해, 오경미·이재욱·홍순영·강승묵·김시연·안주현 등 생전에 음악적 관심과 재능이 남달랐던 7명의 친구들이 제주국제대학교의 2016년 새내기가 된 것입니다. 실제 입학서류를 꾸며 입학증서를 받았고, 현재 2학년 학생으로서 학사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무척 가슴 벅찬 일이지만, '점잖은' 대학가에서 일어나기엔 조금 엉뚱한 발상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입학 제안을 받았을 때 '순영 엄마'가 제주국제대학교 총장에게 남긴 쪽지 (출처 제주국제대학교)>

 

"저는 원래 어린이 노래 제작자로 출발한 공연예술 기획자였습니다. 음반 제작에서부터 축제나 공연을 기획하면서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죠. 오랜 현장 경험을 인정 받아 지금 엔터테인먼트 부분을 가르치기 위해 강단에 섭니다. 교수가 되어 세월호를 이렇게 기억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죠."

 

단원고 희생자들은 그가 교수로서 맞은 첫 제자인 셈입니다. 아이들의 입학을 준비하던 때부터  포기만 하지 말고 천천히 길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기 첫 수업 등 중요한 시기나 외부인들도 많이 참석하는 특강 등에서 그는 희생자들의 출석 체크를 합니다. 올 해 신입생들의 첫 수업 때도 '별이 된 선배들이 있다'며 출석을 함께 불렀습니다. 인터뷰 내내 유가족들을 '학부형'이라 부릅니다. 그는 교수로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잊혀짐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졸업하기까지, 적어도 4년 동안은 잊지 않을 수 있잖아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포기하는 순간, 등 돌리는 사람들이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겁니다. 진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숨게 될 거고요. 그럼 그 다음 세대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요."

 

제주국제대학교 대중음악과에는 유명 글로컬 밴드 사우스카니발의 멤버 전원이 재학 중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파면 후 이튿날 열린 제주시청 앞 촛불집회에서, 사우스카니발은 학교에서 볼 수 없는 16학번 동기 7명의 이름을 피를 토하듯 외쳤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김영호 교수는 그 일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조금 특별한 16학번 제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휴대폰 케이스에 항상 이름을 붙이고 다닌다는 김영호 교수. 이젠 까맣게 때가 묻은 노란 리본이 그 옆에 언제나 그 옆을 지킨다.

 

"저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기반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학생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해요. 인문학과 다양한 예술을 많이 접하라고 항상 이야기하죠. 희생자 동기, 선배들을 항상 기억하라고 제가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 감수성은 잊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학교 안에서, 바깥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너무 엉뚱하다며, 꿈만 쫓는다며 일부 사람들이 자신을 매도할 때도 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도 세월호가 가라앉은 날을 잊지 못합니다. TV가 없어 그 날 저녁에 밖에 나가서야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기획자로서 숙제가 생긴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하나의 코드를 만들고 싶은 것이 저의 큰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연인 김영호로서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 물었더니, 자신은 오랜 타지 생활을 접고 다시 제주 품에 돌아온 제주도민이라며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는 제주 4.3 사건의 유가족이었습니다.

 

"평범한 양민이었던 외조부, 외조모, 삼촌이 4.3 당시 경찰의 칼날에 한 날 한 시에 돌아가셨어요. 4.3은 큰 아픔이고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 만큼 4.16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16은 지금의 일이지요. 역사 왜곡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멈추고, 지금 당장 책임자와 부역자를 처벌할 수 있으니 충분히 바로 잡을 수 있어요. 지금을 놓치면 4.3처럼 몇 십년이 걸릴 겁니다. 역사 청산을 위해 제주도민들이 잊혀진 4.3을 기억하고, 눈 앞의 4.16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김영호 교수가 학생들을 위해 직접 꾸민 실습실을 둘러보다가, 교육 공간에서의 그를 기억하기 위해 포즈를 취해달라 요청했다.

 

봄이 내려앉기 전, 서늘함이 감도는 캠퍼스에서 만난 중년. 하지만, 긴 인터뷰를 마칠 때 쯤 그를 보며 '싸우는 사람이 청년'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호 주제가 청년인데, 교수님께서 가장 청년다우신 것 같아요."

"사실 저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드리머(Dreamer, 꿈 꾸는 사람)'라고 해요. 청년도 듣기 좋군요."

 

김영호 교수님은 자신이 속한 시대에서, 영역에서 끊임없이 꿈을 꾸고, 이뤄내는 청년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그와 함께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더 멋진 일들을 해나가기를 바라며 정리를 마칩니다. (끝)

 

 

글쓴이 _ 고은영

사진촬영 _ 정영찬

 

출처 : https://brunch.co.kr/@memory71077/38